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니발 바르카 (문단 편집) === 군사 =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www.leadership-with-you.com/hannibal.jpg|width=100%]]}}} || '''역사상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'''로 개인의 능력으로 카르타고의 힘을 지중해에 떨쳤고 카르타고를 상징하는 위치에까지 올랐다. '''[[전략]]의 아버지'''[* 이 말은 'Theodore Ayrault Dodge'라는 [[미국]]의 전쟁사 전문가의 저서인《Hannibal: A History of the Art of War Among the Carthaginians and Romans Down to the Battle of Pydna》,《168 BC. With a Detailed Account of the Second Punic War》에 나온다.]라고 불릴 정도로 서구 전쟁사에 있어서 용병술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이다.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[[명장]]으로 찬양받는다. 심지어 현대 [[사관학교]] 교육에서도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. 역시 역사상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꼽히는 [[나폴레옹]]도 그가 존경하는 7대 명장[* 나머지 인물은 [[알렉산드로스 대왕]], [[카이사르]], [[구스타브 2세 아돌프]], [[튀렌 자작]], [[사부아 공자 외젠]], [[프리드리히 대왕]]]에 한니발을 포함시켰다. 그러나 장군 개인이 전쟁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의 한계를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. 그는 걸출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그의 조국은 끝내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. 지휘관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[[양 웬리|총체적인 국력의 차이를 극복하기는]] [[이목(전국시대)|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다.]] [[전쟁]]은 혼자서 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[[진리]]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. 한니발은 천재적인 전술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. 그는 [[알렉산드로스 3세]]의 [[망치와 모루 전술]]을 더욱 발전시켜 양익 포위 전술(double pincer movement tactic)을 고안했다. 이는 군사 전술사에서 매우 중대한 진보였다. 물론 한니발이 처음으로 [[망치와 모루 전술]]을 고안한 사람은 아니다. 하지만 그가 [[칸나이 전투|칸나이]]에서 보여준 양익 포위는 고대 전쟁사를 통틀어 가장 정석적이고 완벽한 형태의 망치와 모루 전술이었다. 그래서 망치와 모루 전술을 가르치는 후대의 사람들은 항상 한니발을 예시로 든다. 완벽한 전투 한 번으로 전술사에 길이 남은 [[위인]]이 된 것이다. 하지만 이것이 한니발이 무조건 [[알렉산드로스 3세]]보다 전술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. [[알렉산드로스 3세]] 또한 아버지 [[필리포스 2세]]의 [[망치와 모루 전술]]을 더욱 발전시킨 위인이었다. 게다가 그는 아군보다 적군이 두 배의 기병을 지닌 상황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. 한니발은 로마를 상대로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항상 기병 전력은 로마보다 우위였다. 더욱이 점령지의 숫자와 넓이 등 전략적 성과도 상당히 차이난다. 게다가 원정 거리와 보급도 알렉산드로스가 한니발보다 훨씬 더 길었다. [[그리스]]에서 [[파키스탄]]까지의 거리를 보면 알 수 있다. 한니발을 알렉산드로스보다 높게 평가할 수 있는 점은 전술의 정석을 가장 완벽하게 실전에서 구사했다는 것이다. [[이수스 전투]], [[가우가멜라 전투]]를 보면 알렉산드로스의 승리에는 전술만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능력과 카리스마도 크게 작용했다. 알렉산드로스를 흉내내는 것은 한니발을 따라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. 즉, 개인의 역량은 알렉산드로스가 더 위였는지도 모르지만 전술 스승으로서는 한니발이 더 나았다고 볼 수 있다. 아무튼 한니발은 전술만이 아니라 전략에 대해서도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많이 회자되었다. 그는 적과 자신의 전력차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도 주저하지 않았다. 그 유명한 [[한니발의 알프스 등반|알프스 산맥 행군]]도 그의 과감한 판단으로 실행한 것이다. 이는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로마의 본토를 기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. 그는 기막힌 우회 기동으로 성공적으로 로마의 핵심부에 안착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